번갯불에 빠지는 날

오늘은 번갯불에 빠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어제까지는 쾌청한 날씨였던 것과는 달리 흐린 구름이 무겁게 끼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비는 오지 않았으니 나는 날씨 변화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일상을 시작했다.

출근할 때는 아직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내 신발은 번갯불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꽃샘추위를 꿰뚫는 정도로 차가운 비가 저희의 신체를 간단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외출을 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산도 없고 방수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깔끔한 옷에 비를 맞으며 땀을 흘렸다.

점심시간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말 그대로 번갯불의 허리케인을 헤쳐야 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우산도 활짝 열고 있는 이에게는 우박이 내리고 신발은 물폭탄을 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괜히 번갯불을 좋아하듯 재밌어하는 편이었다. 번갯불 속에 있으면 좀 더 핏방울 빨리 차게 느껴져 그런지 파도를 타듯 앞으로 소마하지 않으면 고꾸라지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치고 말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욕이 갑자기 돌아왔다. 비룡식당은 유명한 집으로 유명세에 비길 바 없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비 온다고 그랬던지라 비교적 한적한 편이었다. 그래서 일찍 도착한 것도 있었지만, 같이 먹을 친구가 못 나와서 더욱 기다렸다. 친구가 도착했을 때 비는 완전히 그쳤고, 불현듯 나는 어제의 태풍 덕분에 방금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얼마나 희극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날씨가 완전히 밝아왔다. 태풍이 어제 있었던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은 맑고 햇빛은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시내를 산책하며 어제의 폭염과 오늘의 미세먼지가 하루 사이에 얼마나 완전히 바뀌었는지를 비교해 보았다. 심지어 길거리 상점에서는 가을의 향기가 퍼져나왔다. 정말로 신기했다.

이렇게 번갯불에 빠지는 날이었는데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던 것은 아쉬웠지만, 그만큼 이 날은 더욱 특별한 경험이 된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다 의욕이 불타오르게 해 주었고, 힘들게 달라 붙어있는 비더미를 만났을 때 도전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번갯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간단한 일상 속에서도 준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언제나 뜻밖의 일들로 초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